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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쓰의 야당일기

야당일기_27 로스트 메모리즈

by 추억먹고사는김씨 2021.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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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한가롭게 근무 중이던 어느 때, 간병사 한분이 휴대폰을 들고 왔다.

"601호 OOO환자 핸드폰인데요, 좀 이따 보호자분이 오셔서 핸드폰 찾으시면 전달 부탁드립니다."

면회는커녕 병실로 올라가는 것조차 통제하는 요즘 시기에 종종 보호자들에게 물건을 전달해주거나, 보호자들이 환자들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을 갖다 주면 전달해주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휴대폰을 맡았다.

 

잠시 후, 한 노부인께서 오셨고 원무과로 찾아와서 OOO환자의 핸드폰이 여기 있냐며 찾으셨다. 그리고 핸드폰을 전해주는데 연신 죄송하다고 고생이 많으시다며 사과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대기실 한쪽에 자리 잡고 앉으셔서 한참을 휴대폰을 만지셨다.

 

'핸드폰이 고장나서 봐주시러 오셨나'

 

휴대폰을 고친다는 느낌이기엔 어딘가 서투른 손놀림이었지만 이리저리 휴대폰을 만지작하시면서, 가끔은 메모장에 무언가 적으시면서 꽤 오랫동안 앉아 계셨다. 한참 그렇게 계시다가 다시 휴대폰을 건네주시면서 또다시 고생 많으시다며 인사를 하시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어찌 그러시냐고 물어보니, 환자분이 치매가 있으신데 근래에 증세가 더 심해져서 밤낮 가리지 않고 휴대폰에 저장된 지인들에게 연락해서는 망상 같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보호자인 노부인께 주변 지인들이 연락해서는 전화 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많이 받아서 직접 오셔서 환자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하나하나 지우고 계신 것이었다. 당연히 병실을 맡고 있는 간호사나 간병사님께도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하신 거 같아서 죄송하다고 하신 것이었다.

 

이제 환자의 휴대폰에 남은 연락처는 부인과 아들 단 두개만이 남았다고 한다. 물론 부인과 자식에게도 수십 번 계속 연락해서 주절주절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고 하시는데, 가족의 번호마저 지워 버리면 정말 환자에게 남은 번호가 없기에 2개는 남겨놓았다고 한다.

 

"혹시라도 맨정신일때 전화번호가 왜 없어졌냐고 하거든, 본인이 잘못 눌러서 다 지워졌다고 해주세요"

 

행여나 번호가 지워져 환자분이 소동일 일으킬까 당부까지 하시고는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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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살면서 깜박해서 물건을 놔두고 온다던가, 같은 사람한테 같은 이야기를 서너번 되물어본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내가 직접 치매를 겪어보진 못했지만 이런 깜박하는 시간이 하루 중에 오랜 시간을 차지하는 게 치매 아닐까? 자신의 살아온 인생의 기억이 삭제된다는 것, 소중한 것들을 기억 못 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 같다. 그것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도 멀어져가고 이제는 휴대폰 속 연락처마저 삭제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환자는 세상과 단절된 병실이라는 공간에서 조각나있는 자신의 기억을 맞춰줄 방법으로 휴대폰 속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연락처를 지워야만 하는 환자 보호자들의 힘듦도 너무나 이해가 된다. 

 

기억이 삭제된다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좌절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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