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호 OOO님 상태가 안 좋으셔서 조금 이따 보호자 오실 거예요. 아마 다른 병원으로 가실 듯합니다. 진료의뢰서 나오면 발급해주시고 사설 엠뷸런스 좀 불러주세요."
중환자실에서 온 전화였다. 환자분의 상태가 안좋아지셔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가야 할 상태인가 보다 싶어서 서류 발급 준비를 부지런히 하는 중이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혹시 엠뷸런스 연락하셨나요? 잠시 보류해주세요. 보호자 분이랑 얘기하고 확정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다행히 보호자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라 따로 엠뷸런스를 부르지 않았어서 다른 연락이 오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웬일인지 진료의뢰서도 바로 안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고 한참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어서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진행 상황을 물어봤다.
"보호자분께서 환자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어 하지 않으시네요. 주치의 선생님까지 직접 통화 했는데 완강하신가 봐요. 결론이 나지 않아서 일단 저희도 기다리고 있는데요, 보호자분이 직접 오셔서 말씀하시겠대요."
또다시 한참 후, 보호자가 방문하였고, 주치의 선생님과 면담을 하였다.
주치의 선생님은 상태가 좋지 않으니 상급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권하는 것이고, 보호자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견이었다.
"우리 아버지 사실만큼 사셨잖아요. 지금도 많이 고통스러우실 텐데, 다른 병원으로 전원 간다고 이리저리 움직이시면 얼마나 더 아프시겠습니까, 죽음에 대해 책임지라고 하지 않을 테니 최대한 여기서 지내다가 보내드리고 싶네요."
사실 보호자가 전원을 반대한다고 해서 내심 보호자가 참 매정하고 못됐다고 생각했었다. 주치의가 직접 이송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데도 완강히 거부하니 언뜻 들어보면 불효하는 거 같고, 부모님을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보였다. 심하게 생각하면 빨리 돌아가시길 바라는 걸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화를 들어보니 보호자의 마음은 꼭 그렇게만 보이지 않았다. 누구보다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하는 듯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지를 멀리서 직접 찾아와서 주치의한테 전달하러 온 것이었다.
"통화로만 말씀드리는 게 예의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제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을 듯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여기 병원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살펴주세요. 그냥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시게 하는 게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의 의견입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도 보호자의 의견을 수렴하셔서 환자는 그날 다른 병원으로 전원 가지 않고 우리 병원에서 기본 처치를 받고 잘 넘어갔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며칠 지나지 않아 환자분은 임종하셨다. 보호자분들은 조용히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말을 남기고 환자를 모셔갔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보호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누워 있는 환자의 마음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되었다. 분명 잘하고 잘못하고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차이라고 보이지만 어딘가 참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민쓰의 야당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당일기_30 너의 이름은. (3) | 2022.02.15 |
---|---|
야당일기_29 잘사는 방법 (0) | 2021.12.03 |
야당일기_27 로스트 메모리즈 (0) | 2021.11.02 |
야당일기_26 위드코로나와 면회 (0) | 2021.10.31 |
야당일기_25 여기서 이러면 안됩니다. (0) | 2021.10.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