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이 지나고 눈 좀 붙였다가 일어날 때쯤, 병동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여기 O병동인데요, 환자가 술사서 마시면 어떻게 되나요?"
이른 시간부터 꽤나 상기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환자분이 술을 마셔요? 어디서 구했대요?"
"새벽에 잠들었을때 몰래 나와서 뒷문 열고 사 오신 거 같아요"
나는 놀랐다.
뒷문은 보통 밤에 외부인이 들어올수 있거나 환자들이 나갈 수 있어서 잠가둔 곳인데 그쪽으로 나갔다고? 해당 환자는 지금 옥상에 있다는 말을 듣고 올라가 보았다. 옥상 가장 구석에서 등을 지고 휠체어에 앉아 종이컵에 술을 따라서 마시고 있었다. 내가 오는 인기척에 후다닥 술병을 밑으로 숨겼지만 그마저도 나에게 너무 잘 보였다.
"아버님 지금 뭐 드시고 계세요? 그거 술인데 왜 드시고 계신 건가요? 어떻게 가지고 들어오셨어요?"
눈에 뻔히 보이는데 술이 아니라고 우긴다. 술병을 들어서 이건 뭐냐고 하니 그제야 친한 지인이 주고 간 거란다. 그것도 거짓말이다. 올라오기 전 이미 좀 전에 주변 편의점에서 환자가 술을 사간 것을 확인한 상태였다. 나는 술병을 회수하여 내려왔다. 원무과장님께 보고한다고 해도 아주 당당하던 환자였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음주는 무조건 안된다. 환자 본인의 건강에도 큰 영향이 있는 건 당연한 거고, 술에 취해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현재 같은 코로나 시국에 외부에 무단으로 나갔다가 감염되어 들어올 수 도 있는 등 너무나도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큰 일이었다.
그렇게 과장님께 보고한 뒤, 다음날 다시 출근했을 때 그 환자는 더 이상 병원에 없었다. 알고 보니 상습범이었던 것. 새벽타임에 청소 여사님들이 뒷문을 통해 다니시는 것을 알고 그 시간에 나와 술을 사서 그동안 계속 마시고 있던 것이었다. 자리에는 숨겨놨던 소주병이 3병이나 더 나왔다.
처음에는 좋게 타일렀는데, 술 내놓으라며 난동도 피우고, 옥상 화분을 넘어뜨리고 깨뜨리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그리고 술 못 마시게 하니깐 퇴원시켜달라며 오히려 적반하장이었다고 한다.
병원은 한 명의 환자라도 돌보고 치료하는 게 의무이고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환자 1명 만의 병원이 아닌 만큼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환자를 계속 붙잡고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결국 본인이 원하시는 대로 퇴원하셨다고.
분명 맞는 일을 한 거 같은데도 한구석이 씁쓸했다. 환자 본인의 의지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깐. 금방 몸이 상해도 꼭 술을 마셔야겠다는데 어쩌겠나... 그리고 이곳은 병원이고 많은 환자들이 있는 곳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환자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민쓰의 야당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당일기_27 로스트 메모리즈 (0) | 2021.11.02 |
---|---|
야당일기_26 위드코로나와 면회 (0) | 2021.10.31 |
야당일기_24 당신을 보내는. (2) | 2021.10.11 |
야당일기_23 고장 (0) | 2021.08.29 |
야당일기_22 옥상정원 (0) | 2021.08.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