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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쓰의 야당일기

야당일기_11 기저귀

by 추억먹고사는김씨 2021.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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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5층인데요, 환자분 컨트롤이 안돼서 연락드렸어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전화를 받고 얼른 올라갔다.
환자들이 자고 있을 시간임에도 불이 켜져 있는 병실을 가보니, 환자와 직원과의 실랑이가 한참이었다.
간병사분은 이미 지친 표정이었고, 간호사도 힘든 표정으로 나를 보며 자초지종을 얘기해주었다.

"어머니, 원무과 직원입니다. 무슨일로 아직 안주무세요? 어디 불편한 거 있으세요?"

"아몰라~ 괜찮다는데 왜 그래~ 안 할 거야 안 해!"
심한 짜증과 강력한 거부의 어조로 큰소리 내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는데 원인은 바로 기저귀.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져서 기저귀를 착용해야 되는데, 본인은 착용하기 싫어서 계속 실랑이 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침대 시트는 이미 소변으로 젖어있는 상태였다.
"내가 괜찮다는데 왜 자꾸 그래! 직접 화장실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하잖아! 저리 가 안 해!"

나는 간호사 분에게 환자 분이 꼭 기저귀를 착용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였는데, 환자 분이 못하시겠다고 하면 오늘 당장은 안 하더라도 내일이던 모레던 결국 하셔야 된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환자도 그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도 계시는 거 같았다. 다만, 아직 본인이 기저귀를 착용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뿐.

다시 환자 분과 대화를 하였다.
"어머니, 얘기 들었어요. 내키지는 않으시겠지만 기저귀는 꼭 하셔야 한다고 하네요. 제가 그 마음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받아들이셔야 하는 현실일 수 있어요. 조금 불편하고 조금 기분이 상하시더라도 현재를 받아들이고 활동하셔야 마음이 안정되실 거예요. 마음부터 추슬러야 몸도 더 좋아지죠~ 오늘은 시간도 늦었고 주변에 다른 환자분도 계시니깐 그냥 주무시고 밤사이에 고민 한번 해보세요~ 저 이제 내려갈게요"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진정되고 나도 자리로 복귀하였지만 그날은 밤새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아마도 본인도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우시겠지. 정신도 멀쩡하고 가끔 실수하기는 해도 아직은 괜찮다고. 기저귀 착용 자체가 충분히 심리적으로 상실감이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라도 그럴 거 같았으니.
하지만 결국 스스로가 하루라도 빨리 현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슬프지만 그런 시간이 온 것이니깐.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출근 때 걱정돼서 어찌 됐는지 물어보니 다음날부터 기저귀를 착용하시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말수도 없어지고 누워만 계신다고 하셨다. 절반은 안심이 되었다. 조금은 마음을 여신 게 아닌가.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힘내세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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